잊지 못할 인연

9.2 부모님이 이혼하시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주인공 존은 다소 냉소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 아버지는 쾌락주의적인 삶을 살고, 함께 사는 어머니는 그의 몸을 만지지 않는다.

전반적으로 그의 부모는 치명적인 결함은 없지만, 아이가 의지할 수 있는 훌륭한 사람들은 아니다.

적어도 그의 어머니는 아버지라는 나쁜 남자와 사랑에 빠져서 아들에 대한 마음의 벽을 느끼고, 다른 남자와 재혼하는 것을 주저하고, 그것에 대해 소란을 피운다.

어쨌든 주인공은 사춘기인데, 이는 2학년 증후군을 겪기에 완벽한 시기이기 때문에, 그가 자신의 양육에 대해 냉소주의를 넘어 환멸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고 느꼈다.

독자로서는 약간 사기꾼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글을 쓰는 캐릭터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몰입감을 불러일으키는 캐릭터다.

이 작품의 주요 줄거리는 냉소적인 성격의 존이 우연히 같은 나이의 아름다운 여성인 마리솔과 사랑에 빠지고, 그 여자가 레즈비언이라는 것이다.

결국 그는 마리솔과 이야기를 하게 되지만, 그녀가 자신의 성적 정체성에 대해 공개적으로 벽을 치자, 존은 자신도 성적 정체성으로 고통받고 있다고 말하며 그녀의 의심을 달래고 우정을 유지한다.

이 과정에서 존은 자신의 성적 정체성, 이름 등에 대해 거짓말을 하고, 마리솔은 레즈비언이라는 사실과 그 사실 때문에 부모와 사이가 틀어진 것 등 자신의 고민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이러한 태도의 차이는 계획대로 두 사람의 관계에 파장을 일으키고, 존은 거짓말을 넘어서 삶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성찰한다.

그가 직접 글을 편집하고 발행하는 1인 잡지라는 설정도 흥미롭고, 1인 잡지를 통해 만난 두 남녀가 본래부터 도달할 수 없는 관계라는 점도 매우 흥미롭다.

더불어 존이 그를 압박할수록 존만큼이나 냉소적이면서도 순종적으로 대응하는 마리솔의 모습은 인상적이며, 이는 성 정체성이 칼날처럼 명확하게 구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반영하는 듯하다.

영화 캐럴의 대사처럼 “그녀가 여자라서 좋았던 게 아니라, 여자라서 좋았어”처럼 마리솔은 처음에 존에 대한 자신의 감정이 우정이라고 느꼈지만, 독자로서 그녀는 우정과 사랑 사이 어딘가에 있다고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의 사랑이 그가 원하는 대로 열매를 맺지 못한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러나 사랑은 반드시 열매를 맺어야 한다.

때로는 좌절이 사랑이고 성장이며, 비록 잠깐이기는 했지만 마리솔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 왔으니 무의미하다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그는 스스로 사랑에 빠지면서 사랑에 대한 냉소적인 태도를 버려야 했다.

다소 가혹한 형태의 성장이기는 하지만, 이를 통해 자신이 성장했고 벽을 극복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박수를 보낼 만하다.

마리솔의 조언 덕분에 부모님과 친구들과의 관계가 좋아졌고, 자신이 환멸을 느꼈던 주변 사람들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에 비록 로맨틱한 관계로 발전하지는 않았지만, 마리솔의 등장은 존의 삶에 없어서는 안 될 연결고리였다.

글을 통해 형성된 관계라 두 사람의 대화가 깊었고, 30년 가까이 전에 출간된 작품인데도 성적 정체성에 대한 통찰력이 예리해서 여러모로 읽고 음미하는 재미가 있는 작품이었다.

사춘기 소설을 다시 읽으면 내용과 상관없이 문체가 유치하고 사건의 규모와 깊이가 얕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 작품은 그렇지 않았다.

이야기 자체의 규모는 작지만,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와 그 안에 담긴 좌절의 과정은 참으로 보편적이고 진지한 주제라서 30대가 된 뒤에 다시 읽어도 같은 몰입감과 감상으로 읽을 수 있었다.

오히려 존과 마리솔의 생각과 존의 마리솔에 대한 사랑이 너무나 진지해서 10년 뒤에 다시 읽어도 더 성숙한 맛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정말 10년 뒤에 다시 읽어볼 것 같습니다.

#엘린 위틀링거, #미하엘 프린츠상 수상자, #두 번 읽다